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이즈미 준이치로 (문단 편집) === 퇴임 후: [[아베 신조|정치적 제자]]와의 충돌 === 5년 반을 집권한 자민당 총리인 그가 2010년대 들어선 '''원전 반대'''를 외치고 다녀서 [[아베 신조]]와 자민당 인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일본의 시사 잡지 '프레지던트'의 창간 50주년 기념 행사에서 고이즈미는 "인간이 [[원자력]]을 제어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정치권이 원전 제로를 결단해야 한다'"고 역설해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사회민주당(일본)|사회민주당]]과의 좌담 강연회에서는 "(기술 문제와 관계 없이) 국민과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원전 제로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하며 원전에 대해서는 급진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사실 고이즈미는 총리 재직 시절만 해도 원전 찬성론자였는데, 2013년 8월 [[핀란드]]의 [[온칼로|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장]]을 방문한 뒤 지하수가 많고 지반이 불안한 일본에서 원전을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여 탈원전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직후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도 큰 영향을 줬을듯. 그렇게 아베 내각과 각을 세우다 결국 2014년 1월 14일엔 [[원자력 발전소|탈원전]]을 기치로 하여, 2월 9일에 있을 [[도쿄도]]지사 선거에 나선 [[호소카와 모리히로]] 후보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4&oid=421&aid=0000639506|전격 지지 선언]]. 참고로 호소카와는 전 일본 총리로 비 자민당 출신 총리다. 이런 배경엔 정치적 스승인 자신의 탈원전 조언을 [[아베 신조]]가 무시한 채 중동 지방을 돌아다니며 원전 세일즈를 했던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전직 스승 총리 vs. 현직 제자 총리[*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 내각에서 [[내각관방장관]]을 지냈으며, 파벌도 똑같은 [[세이와 정책연구회|청화회]]([[모리 요시로|모리]]파) 출신인지라 고이즈미의 제자라 봐도 무방하다.] 구도가 되어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고, 자민당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를 자민당 유세에 투입하여 부자대결 식으로 맞불을 놓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신지로가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고이즈미와 정면 대결하기보다는 원전 이슈를 희석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선거 결과 자민당 후보가 막강한 화력을 등에 업고 호소카와 후보를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앞서며 승리했다. 자민당의 관계자는 고이즈미가 아베를 흔들려고 이런다기보다는 자민당 내에 친원전 의원들이 아베에게 원전 재가동을 압박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스처로 본다고 지적했다. 어찌 되었든 당의 원전 재가동 정책과는 정반대의 행보라 "그냥 말을 말았으면" 하는 반응이 대다수. 그의 아들인 신지로를 비롯해서 유력 인사들은 고이즈미의 발언과 자민당 사이에 선긋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와는 우정 민영화 철회 등으로 정책적 골이 상당한지라 고이즈미의 행보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동일본대지진 및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4주년인 2015년 4월 11일 후쿠시마현에서 행한 강연에서 오염수는 통제되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https://youtu.be/rj3N9yaLD_E|#]] 2016년 현재도 탈원전 운동에 열심인 듯 하다. 5월에는 미국 강연에서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도호쿠 대지진]] 당시 구호작전에 나섰다가 피폭당한 [[미군]]을 도와야 한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같은 때 방일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총리와도 만났는데, 대화 주제 중 하나가 부시와 고이즈미와의 추억이었다고 한다. 아베가 고이즈미 정권 당시 관방장관 출신이라 그런 듯 한데, 원전 문제로 둘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을 보면 미묘한 부분이 있다. 사실 고이즈미의 성향 자체가 완전히 통일된 게 아니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데, 정치/경제적으로는 좀 더 보수적인 성향이나 사회적인 문제에선 진보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위에서 말한 우체국 민영화야 개혁은 개혁이래도 경제적으로 봐서는 약간 보수적인 시각이겠으나, '''[[천황]]의 여계 혈통을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했던 사람도 고이즈미였다.[* 1965년 이래 [[일본 황실]]에는 [[공주]]만 줄줄이 9명이 태어났고, [[나루히토]] 황태자와 [[마사코 황후|마사코 황태자비]] 내외는 오랜 [[불임]] 끝에 2001년 겨우 [[아이코 공주]]를 낳았다. 그래서 [[여제|여성 천황]]이나 여계 천황 허용도 검토했던 건데, 2006년 [[나루히토]] 황태자의 남동생 [[후미히토]] 친왕이 늦둥이 아들 [[히사히토]]를 낳으면서 유야무야 되어 버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치/경제적으로도 마냥 보수적 성향이라기보단,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리버럴 성향'''이 드러난다고 일본내에서 평가받았던게 고이즈미였다. 애초에 고이즈미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자이고, 사회 분야에서도 시민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자민당 총재직 역임 당시, 파벌 정치에 반대하고 자민당을 뿌리부터 바꿔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 이 부분을 보고 고이즈미가 극우 유권자들과 영합한것 아니냐고 주장할수는 있다. 사실 이건 과거사 인식에 하자가 있는 인물들과 우익 유권자들이 넘쳐나는(이중 극단종자는 [[세키호타이 사건]] 같은 신문사 테러를 저지르기도 했다) 일본 정치판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겪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천황이 전쟁에 책임이 있다고 발언했다 총격맞은 시장까지 있는 판국이니. 21세기 들어선 이런 물리적 테러 행위 자첸 줄어들었지만, [[넷우익]]들이 기승이다. 즉, 자기 정치 활동에 차질을 안 빚기 위해 개인적 소신과 무관하게 혹은 소신을 바꿔가면서까지 떠벌리는 측면도 있는 것.][* 다만 착각하면 안되는 것이 일본에서도 이런 과거사 발언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은 많다. 주로 자민당에 반대하는 세력이나 자민당내 비주류가 많아서 문제일 뿐. 물론 그 수가 적진 않다. 당장 2019년 참의원 선거만 봐도 정당 득표율만 보면 범야권이 4할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게다가 범여권인 공명당도 과거사 문제에선 자민당 주류와 결이 다르다.] 2018년에는 고이즈미가 [[아베 신조]] 총리의 내년 개헌 완료 및 2020년 새 헌법 시행 추진과 관련해 "해야 하는 일은 안 하고 할 수 없는 일만 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12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에) 야당은 찬성하지 않는다"며 아베 총리를 지적했다. 고이즈미는 [[니가타현]]에서 열린 반(反)원전 집회에 참석해 야권이 지지하는 니가타현지사 후보와 악수를 했고,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야권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공동대표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원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2018년 12월에는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의 개헌 드라이브에 대해 "판단력이 나쁘다"고 비판한 적도 있다. 2019년, 아베 내각 하에서 환경대신이 된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에게 본인의 여망을 담아 원전을 없애달라는 덕담을 꺼냈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1081300?sid=104|#]] 15일 NHK에 따르면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날 [[이바라키현]] [[히타치시]]에서 열린 '원전 제로(0)' 집회에 강연자로 나서 아들 신지로가 환경상으로 입각한 것과 관련해 "힘냈으면 좋겠다. 그(신지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로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환경은 지금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환경을 중요하게 다뤄서 원전을 없앴으면 좋겠다"며 "(일본을) 자연 에너지로 발전 가능한 국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반원전' 목소리를 내고 있다. 틈만 나면 반원전 주장을 공개적으로 펼쳐 원전 재가동 정책을 펴는 아베 총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2020년 3월 31일 발간된 주간지 '슈칸아사히'(週刊朝日)에 실린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는 사학 비리에 대해 책임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베 총리를 작심한듯 강하게 비판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43613|고이즈미 전 총리, "아베 거짓말 해...총리직 그만둬야" 비난]]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11511112|'정치적 스승' 고이즈미 "아베, 거짓말 해... 그만둬야" 맹비난]] 처음에 아베 총리는 이에 대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책에 전념하겠다면서 사퇴는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004011721001|#]] 그런데... 아베 총리는 결국 5개월 뒤 '''진짜로 사임하고 말았다.''' 물론 사학 비리는 입 안 대고 단순히 지병 때문이라는 이유만 붙이고 얼른 도망갔다. 그리고 후임에는 [[스가 요시히데]]가 선출되었다. 또, [[2020년]] [[11월 3일]]에는 [[홋카이도]]에 핵처리 폐기시설을 신설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비슷한시기 홋카이도에 있는 가타오카하루오촌장 선거에서 자민당의 지원을 받은 핵폐기물 처분장 유치파가 승리했기 때문. 물론 이때 이미 총리는 [[스가 요시히데]]로 바뀐 이후지만 아베가 막후에서 여전히 실세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었다.[[https://www3.nhk.or.jp/news/html/20201103/k10012693891000.html?utm_int=news-new_contents_list-items_001|#]] 이렇게 이어져온 정치적 사제의 대립은 아베 신조가 2022년 7월 8일 [[아베 신조 피살 사건|선거 유세 도중 피살을 당하면서]] 어긋난 상태로 결말을 끝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